23년 상반기는 크게 이직과 수습통과라는 두 가지 이벤트가 마무리 되었다.
1월 말에 이직을 준비하고 4월부터 새 회사로 이직을 했다. 4월부터 새 회사에 적응하고, 6월 수습기간도 잘 마무리 되었다.
상반기 키워드: 이직
반드시 이직을 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물류 도메인으로 갈 때가 되었다. 비즈니스에서 어떤 것이 가장 관심이 있냐고 한다면 당연 ‘물류’였다. 앱이나 웹의 사용자에 대한 프로덕트 분석에는 깊은 관심이 없는 편이었고, 산업 시스템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물류에 관심이 많았는데 도메인이 워낙 어렵고 복잡해서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여러가지 준비 상황이 이제는 때가 되었다 생각해서 움직였다.
(2) 이전 회사에서 더이상 확장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업무의 깊이가 일정 수준에서 더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비즈니스가 꾸준히 성장해야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도 확장된다. 전세계적으로 경제 상황이 안좋아지면서 여러 스타트업들에 위기설이 나오는 상황이었고, 이력이 짧은 회사는 아니었지만 역시 매출 영향과 재정적 긴축은 피할 수 없었다.
(3) 1분기 이직에 성공하지 못하면 채용시장이 심하게 얼어붙을 것이 예상되었다. 호황기 때 이직과는 정반대의 분위기가 올 것이 뻔했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한동안 원하는 도메인에 진입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봐도봐도 재밌는 도메인: 물류
처음 입사하고 권한을 받자마자 일주일 정도는 하루종일 회사 컨플루언스만 읽었다. OMS(Order Management System), WMS(Warehouse Management System), SCM(Supply Chain Management), FC(Fulfillment Center) 등 책에서만 보던 내용들이 실제 운영되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재밌었다. 거기에 정돈된 데이터 카탈로그 서비스까지 제공된 덕분에 데이터 찾아보는 것도 수월했다. 어느 직군이나 그렇겠지만 DA, MLE, 서버엔지니어 같은 직군은 비즈니스 도메인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입사하고 벌써 3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데이터 보는 것은 지루한 적이 없다.
채용은 운, 정말 운
입사하고 내가 채용 되었던 과정에 대해서 들어보면 정말 ‘운’이었다. 나는 어차피 나와 비슷한 연차에 이 회사에 이력서를 내는 사람들의 실력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다들 최선을 다했고, 각자의 자리에서 커리어를 밟고 능력을 키워 왔을 것이다. 결국 이 팀에서 필요로 하는 조건의 사람이 적기에 지원을 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권정민님의 말씀을 빌려보면 각자의 회사에 맞는 사람을 찾는 과정이다. 그리고 나 역시 면접관으로 참여해봤지만 그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면접관에게 없다. 채용시장에서의 조건에 맞는 비슷한 수준의 경쟁자끼리 만났을 때 결국 작용하는 것은 운이다.
어차피 각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다르고 애초에 절대적으로 훌륭한 인재라는 게 존재하는 지 의문이기 때문에… 그냥 면접이나 채용이라는 게 각자 맞는 회사 각자 맞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않나 생각한다. (출처: 꼬젯님 트위터)
상반기를 마무리하며 감사한 것들
회사의 일관된 메시지
개인이든 회사든 말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관찰해야할 것은 행동이다. 말과 행동이 일관되고 꾸준한지 관찰해야 그 메시지가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 측면에서 좋은 문화를 가진 회사라고 생각한다. 직업이라는 것이 돈이 1순위라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중요한 요인들이 상황에 따라 가중치가 바뀌게 되는데 그 측면에서 나에게는 회사의 도덕성과 문화가 가중치가 높았다. 슬프게도 한국에서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지만 가장 높은 점수를 매겨두었던 곳에 합격하게 되었다. 바깥에서 상상했던 것들 그대로 안에서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직원들이 행복하게 회사를 다녔으면 좋겠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구석구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회사의 문화부터 실장님, 팀장님 모두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 계셨다. (사실 무엇보다 책을 무제한으로 사줘서(심지어 내 소유) 행복감이 떨어질 수가 없다.)
‘팀이 우선’의 장점
이직한 회사는 개인보다 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 팀이 어떤 일을 하는 팀이기 때문에 나는 그 일에 대한 책임을 함께진다. 장단이 있겠지만 팀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다른 팀원의 일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은 매우 큰 시너지를 가져온다.
환경이 주는 기회
문제를 집중해서 풀 수 있다는 것
큰 기업의 가장 큰 장점은 팀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사람이 없으면 서버가 데브옵스도 하고, 데이터엔지니어가 분석도 한다. 큰 기업에 있으니 특정 주제로 깊게 고민할 수 있어서 잘 맞는다. 넓은 영역을 넘나들며 업무를 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집중해서 깊게 들어가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지금 환경이 잘 맞는다. 주제가 정해지다보니 깊이 있게 고민할 시간도 함께 주어졌다. 풀어야할 재미있는 문제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로 논문을 써보는 것이 목표다.
환경에 따른 성장
회사가 크니까 고개만 돌려도 다양한 측면에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전문가도 많고 같은 분야인데 보고 배울 것도 많고 다른 분야이지만 차용할 수 있는 것도 많다. 환경에 의해 저절로 성장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마치 자산이 복리로 불어나는 것처럼. 무엇보다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많다보니 밖에서 레퍼런스를 찾지 않고 내부에 물어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행복하다. 동료가 곧 복지라는 말이 이런 의미인 것 같다.
가장 중요했던 것: 체력
상반기 성취의 1등 공신은 체력이다. 꾸준히 공부할 수 있었던 것, 이직 준비동안 지치지 않을 수 있던 것, 수습기간동안 적지 않은 양의 도메인 지식을 습득하고 성과를 만들어냈던 것 모두 체력 덕분이었다.
여기서 체력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물리적인 내 신체의 기초 체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통계학, 수학, 프로그래밍 등 지식에 대한 기초체력이었다. 적시에 효율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결국 체력 덕분이다. 더 큰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앞으로도 체력을 키우는 것에는 계속 시간을 쓸 생각이다.
생각나는 에피소드
수습기간 중에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내가 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투입 되었는데, 내 분석 결과는 지금 그 단계의 방법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주간회의 때 팀장님께 ‘이 문제를 이렇게 푸는 방법이 적합하지 않다’라는 메시지를 드렸다. 팀장님은 관련 미팅은 별도로 잡아서 얘기하자고 하셨다. 그 미팅이 시작되자마자 팀장님은 내가 처음 저 얘기 꺼냈을 때 마음이 덜컹 내려 앉았다 하셨다. 나는 이 방법보다 더 쉽게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서 제안드리는 취지로 얘기했던 것인데, 팀장님은 뽑았는데 못하겠다고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때가 입사하고 한달 정도 지난 시기라 팀장님과 상호 신뢰를 구축해 나아가는 단계였다. 이 사실을 간과하고 내가 너무 강한 메시지를 드렸다는 것을 그 얘기를 듣고 깨달았다. 결론을 먼저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오해가 커진 것 같기도 하다. 그날 미팅에서 마지막에 다행이라며 환하게 웃으시던 팀장님 모습에 재밌고 죄송했다.
가까운 미래, 조금 먼 미래
하반기에 풀고 있는 문제가 꽤나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좋은 성과를 만들고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싶다. 2년 또는 3년정도 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조금 먼 미래에는 재밌는 주제로 논문을 쓰고 싶다. 어떤 주제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풀어야할 문제가 많아서 그중에 고를 수 있을 것 같다.